친한 동기의 결혼식 영상 편집을 도와주다 보니, 용돈을 조금 더 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학회 포스터 인쇄비가 예상보다 크게 나와 카드값이 얇아진 시점이었다. 그 주 금요일 저녁, 사진 동호회 단톡방에 반짝 뜬 공고 하나가 눈길을 붙잡았다.
- 원데이 웨딩촬영 보조 알바
- 촬영 경력 없어도 가능
- 카메라·렌즈 전부 대여
- 서울 근교 스냅 4시간
- 페이 20만 선지급 후 10만 현장 지급
보조 일이라면 스트로보 들고 반사판 잡아 주는 수준일 텐데, 장비까지 빌려 준다니 솔직히 쉽고 달콤해 보였다. 지원은 구글 설문 하나면 끝났고, 연락처와 계좌번호 칸이 비어 있지 않아 항목을 채워 넣었다. 바로 다음 날 오후, 담당자라고 밝힌 사람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고 텍스트만 왔다 갔다 했지만, 말투가 능숙했다. 스케줄표와 의상 안내서가 담긴 PDF도 곧장 보내 왔는데, 로고와 서체가 깔끔해서 더 안심이 됐다.
문제는 입금 방식이었다. 선지급 20만을 받으려면 먼저 3만5천 원짜리 상해보험에 들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보험은 촬영 업체가 단체로 들어 주는데 법인 카드 사용이 막혀 있어 개인 계좌로 일괄 입금해 달라고 했다. 그 돈을 받아 일괄로 보험사에 넣는 구조라고 했다. 금액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곳에 내 정보를 먼저 맡기고 돈을 보낸 뒤 페이를 받는 방향이라, 마음 한켠이 빠르게 건조해졌다.
고민하던 중, 다른 단톡방 지인이 비슷한 알바 공고를 봤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똑같은 내용을 제안 받았으나 검색해 보니 계약서 사본이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복붙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내 PDF와 비교해 보니 색상 배열과 폰트 크기가 완벽히 일치했다. 제작 날짜는 달랐지만 하단 회색 줄에 들어 있는 회사 이름이 똑같았다.
본능적으로 먹튀위크 사이트에 들어가 회사명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첫 번째 게시물이 올라온 지 이틀도 안 된 따끈한 글이었다. 제목이 웨딩촬영 보조 선지급 사기 의심이었고, 피해 사례 세 줄 요약이 바로 오늘 들은 설명과 닮아 있었다. 보험비를 송금하면 담당자가 휴대폰을 끄고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댓글에는 다른 피해자가 계좌번호 뒤 네 자리를 공유해 놨는데, 내 메신저 창에 찍혀 있던 숫자와 같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길지 않았다. 채팅방을 나가면서 보험료를 요구한 이유를 따졌다. 상대는 설명은 나중에 드린다며 이체를 독촉했지만, 곧 차단 버튼이 눌렸다. 이어서 단톡방 관리자에게 스크린샷을 전송했고, 공고글은 두 시간 만에 삭제됐다. 관리자 답장으로 보니 이미 낚여 돈을 보낸 사람이 있었고, 뒤늦게 알게 된 신고 접수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렌즈를 잡고 나선 적 없는 알바비는 증발했지만 적어도 내 카드값이 더 늘진 않았다. 기분 전환으로 동대문 근처 도매 서점에 들러 중고 사진집 한 권을 골랐다. 책 가격은 보험료보다 조금 더 나갔지만, 속을 펼치자마자 푸른 그라데이션의 필름 컷이 눈을 채워 줬다. 결국 사진은 직접 찍는 것보다 내 시간을 찍어 가는 쪽을 고르는 편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음번에 원데이 알바가 다시 나타나도 나는 먼저 회색 줄의 회사 이름을 확대해 볼 것이다. 그리고 숫자 네 자리를 먹튀위크에 다시 묻는 짧은 습관을 두고두고 이어 갈 생각이다.